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 (문단 편집) === 독일군의 하르코프 재탈환과 전투 종결 === 포위전의 결과로 삽시간에 소련군의 전선에는 200km에 달하는 공백이 발생했고, 스탈린과 스타프카는 이 엄청난 재앙에 경악했다. 게다가 토성 작전 확대로 많은 부대들이 독일 중부집단군[* 르제프, 데미얀스크] 공략에 투입되는 바람에 정작 하르코프에는 제25근위소총병 사단과 기타 제대 몇 개 이외에는 별 다른 수비병력이 없어서 사실상 무주공산인 상태가 되었다. 보로네시 전선군 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긴 바투틴은 중부집단군 방면에 배치된 류발코의 제3전차군을 하르코프로 긴급투입하지만, 하우서의 SS 기갑군단이 이를 정면에서 차단한다. 이어서 측면으로 호트의 제4 기갑군 예하 제6, 17기갑사단이 밀고들어오고, 아직 전력이 온전한 켐프 분견군까지 가세하자 제3전차군은 하르코프는 구경도 하지 못하고 개박살이 나고 만다. 굉장히 유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스탈린그라드 전투|얼마전의 대참사]]를 기억하는 만슈타인은 곧장 도시로 진입하지 않고 제1기갑군을 하르코프의 북서쪽, 제4 기갑군은 북동쪽으로 이동시켜 하르코프를 포위한다. 그리하여 제1기갑군은 도네츠 강 남안에, 제4기갑군의 선봉은 하르코프 남쪽에서 약 16킬로미터 밖에 있는 모슈 강에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3월 5일, 히틀러는 만슈타인의 보고를 받고 뛸 듯이 기뻐했다. 3월 7일, 흡족해하던 히틀러는 즉시 하르코프를 재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하필 그 때 라스푸티차가 시작되는 바람에 독일군의 진격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 때문에 히틀러가 원하는 대로 하르코프를 재빨리 점령할 것은 힘들어 보였지만... 하늘이 독일 편이었는지 이번에는 강추위가 시작되어 진흙탕이 됐던 도로들이 죄다 얼어붙어 버렸다. 그 덕에 기동이 원활해지자 만슈타인은 호트와 상의 끝에 하르코프를 스탈린그라드의 속편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SS 기갑군단이 모슈 강을 도하해 켐프 분견군과 합세하여 하르코프를 물샐틈 없이 포위하고 조금씩 포위망을 좁히기로 결정했다. 한편, 러시아 남부 전선에서 이런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음에도 스타프카는 독일 중부집단군에 대한 공세는 이어나갈 예정이었다. 같은 7일, 로코솝스키는 공세 규모는 축소하되 공격은 지속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러나 겨우겨우 제21군을 전선에 합류시키고 공세를 시작하려하자, 독일 제2군도 같은 날에 제4기갑사단과 헝가리군 부대로 로코솝스키의 서쪽 측면에 대한 반격을 시도했다. 이에 대해 소련의 크류코프가 지휘하는 제2근위기병군단이 계속된 진격에 지쳐있는 데다가 너무 넓게 산개되어있어 독일 제2군의 공격을 잘 막아내지 못한다. 3월 9일, SS 기갑군단은 명령을 받고 모슈 강을 도하하여 하르코프 시 외곽에 다다랐다. 하우서는 공격을 기다릴 생각이 없었던 데다가 히틀러가 상황이 괜찮으면 하르코프 시를 점령해도 좋다 하자 LSSAH 사단을 선봉으로 하르코프 시 공략을 시작했다. LSSAH 예하 제1 SS 기갑척탄병 연대는 제1SS기갑연대의 전차와 돌격포 지원을 받아 연대장인 [[프리츠 비트]] 대령이 지휘하는 '프리츠 비트 전투단'으로 개편되었고 하르코프 북쪽 방향에서 소련군의 방어망을 분쇄해 나갔다. 이 때 [[쿠르트 마이어]] 소령이 지휘하던 LSSAH 직할 기갑수색대대는 대담하게 하르코프 시의 중심지인 붉은 광장으로 빠르게 진격해서 사방에서 몰려드는 소련군과 혈전을 벌였다. 하지만 마이어의 너무 과감한 공격이 소련군에게 포위당할 위기에 처하자 제2 SS 기갑척탄병 연대 제3대대장인 [[요아힘 파이퍼]] 소령이 단 2대의 하프트랙을 '파이퍼 전투단'으로 편성해 마이어의 기갑수색대대 구출에 나섰다.[* 아르덴 대공세의 그 파이퍼 전투단 사령관 요아힘 파이퍼가 맞으며, 그의 '파이퍼 전투단'은 바로 이때 창설된다.] 소련군의 공격이 파이퍼 전투단으로 집중되어 파이퍼가 직접 [[MP40]]을 잡고 교전해야 할 정도의 위기를 맞지만, 전투단은 결국 붉은 광장에 도달해 제1 SS 기갑수색대를 지원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제2 SS 기갑척탄병 연대 1대대가 증원되면서 SS는 붉은 광장을 거점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고 시내의 소련군을 소탕하기 시작했다. 붉은 광장은 LSSAH 기갑수색대대의 활약을 기리기 위해 '라이프슈탄다르테' 광장으로 개칭되었다. 3월 14일, 치열한 시가전 끝에 소련군 최후의 거점인 하르코프 트랙터 공장이 점령되면서 하르코프 시가전은 종지부를 찍었다. 탈출하던 소련군은 다스 라이히와 토텐코프의 포위망에 걸려 섬멸되었다. LSSAH는 벨고로드로의 진격을 속개하여, 벨고로드를 점령한다. 이어서 독일 남부집단군이 하르코프, 벨고로드에서 북상하여 중부전선군의 측면을 압박하려하자 스타프카는 제62군, 제64군을 로코솝스키에게 보내 어떻게든 하르코프 북쪽 방면의 전선을 유지하려했고, 중부집단군에 대한 모든 공세를 중단하고 로코솝스키에게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소련군 1943년 동계 공세는 만슈타인의 계략에 크게 한방을 먹은채로 막을 내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